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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은 전체 암 중에서도 유독 유전이나 생활습관 탓으로 돌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저처럼 어머니가 멀쩡히 건강하신 분도 걸립니다. 호르몬양성 HER2음성 3기 유방암 환우로서, 치료를 받으며 직접 부딪혀 본 것들과 최신 연구 흐름을 같이 정리해 봤습니다.

호르몬양성 유방암, 내 몸이 호르몬을 먹고 자란다는 것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 제일 먼저 세 가지를 확인합니다.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수용체(호르몬 수용체) 양성 여부, HER2 단백질 과발현 여부, 그리고 Ki-67이라 불리는 세포 증식 속도입니다. 저는 호르몬 수용체 양성에 HER2 음성, 이른바 'HR+/HER2-' 유형입니다. 전체 유방암의 약 70%가 이 유형에 해당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HR+/HER2-란, 암세포 표면에 여성호르몬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있어 에스트로겐을 '먹이'로 증식하는 유형을 말합니다. 역으로 말하면 여성호르몬을 차단하면 암세포가 굶주려 증식을 멈추거나 사멸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이 유형 환자들에게 호르몬 차단 치료가 핵심 치료로 자리 잡혀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항암도 아니고 호르몬 약만 먹으면 되는 건가?" 싶었는데, 치료를 받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수술 후에도 5년에서 10년 이상 호르몬 억제제를 복용해야 하고, 폐경이 됐다 해도 치료가 멈추지 않는다는 걸요. 쉬운 치료처럼 보이지만 결코 짧거나 가벼운 싸움이 아닙니다.
유방암 발생에 왜 호르몬이 그토록 관여하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여성은 생리 주기를 통해 평생 호르몬 수치가 반복적으로 오르내리고, 그 자극이 유방 세포의 분열을 계속 촉진합니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DNA 복제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생기고, 그 오류가 쌓이면 어느 순간 암으로 전환됩니다. 임신 기간에 생리가 멈추면 이 분열 자극이 줄어 보호 효과가 생긴다는 연구도 있습니다(출처: American Cancer Society).
- HR+/HER2- 유형: 전체 유방암의 약 70%, 호르몬 차단 치료가 핵심
- HER2 양성 유형: 표적 치료제(트라스투주맙 등) 병행
- 삼중음성(TNBC): 호르몬·HER2 모두 음성, 항암 치료 의존도 높음
항암치료, 반드시 해야 하는가 — 온코타입 DX가 갈라놓는 운명
항암치료를 앞두고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HR+/HER2- 유형은 항암 안 해도 된다고 하던데요?"입니다. 저도 처음에 그 말을 듣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종양 크기가 5cm를 넘었기 때문에 항암을 하고 있습니다.
HR+/HER2- 유형에서 항암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대표적인 도구가 온코타입 DX(Oncotype DX)입니다. 온코타입 DX란 암 조직에서 RNA를 추출해 21개 유전자의 발현 수준을 수치화한 검사로, '재발 점수(Recurrence Score)'를 산출해 항암 치료가 실제로 도움이 되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구별해 줍니다. 점수가 낮은 환자는 항암 없이 호르몬 치료만으로도 예후가 동등하다는 임상 데이터가 있습니다(출처: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TAILORx 연구).
그런데 저처럼 종양이 크거나 림프절 전이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온코타입 점수와 무관하게 항암을 먼저 해서 크기를 줄이고 수술하는 방향을 택하기도 합니다. 교수님께서도 "크기를 줄이고 나서 수술을 하자"는 방향을 설명해 주셨고, 저는 그게 단순히 암을 줄이는 것 이상으로 아직 젊은 나이에 유방을 최대한 살려보려는 배려이기도 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항암치료가 정상 세포까지 공격한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치료 결정이 더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한편으로는 암은 수술로 끝나는 병이 아니라 재발·전이를 평생 경계해야 하는 병이기 때문에, 치료 선택지를 미리 아껴두는 전략적 사고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진 의사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다고 단정하기보다는, 개개인의 종양 특성에 맞는 계획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암은 운인가, 예방 가능한가 — 생활습관과 유전자 사이
진단 이후 어머니와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머니는 저보다 훨씬 건강하십니다. 십수 년간 수영을 해오셨고, 술·담배와는 거리가 멀고, 식단도 꾸준히 관리해 오셨습니다. 저는 솔직히 혼자 살면서 수면도, 식사도 많이 엉망으로 살았습니다. 같은 유전자를 나눴는데 왜 저만 걸렸을까 생각해 보면, 결국 생활습관이 유전자 돌연변이 발생 확률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는 쪽으로 답이 기울었습니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는 의견이 갈립니다. 전체 암 중 약 3분의 1은 순수한 복제 오류, 즉 운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DNA 복제 오류(Replication Error)란 세포가 분열하면서 유전자를 복사할 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실수를 말하는데, 우리 몸에 30조 개에 달하는 세포가 끊임없이 분열하는 한 이 오류는 피할 수 없습니다. 나머지 3분의 1은 환경적 발암 인자, 또 다른 3분의 1은 유전적 소인으로 설명됩니다.
유방암에서 잘 알려진 유전적 소인이 BRCA1·BRCA2(브라카 원·투) 유전자 변이입니다. BRCA란 원래 DNA 손상을 복구하는 역할을 하는 유전자인데, 이것이 망가진 상태로 태어나면 암 발생에 필요한 두 번의 타격 중 하나가 이미 맞은 상태라 훨씬 빨리 암으로 진행됩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예방적 유방 절제를 선택한 것도 이 유전자 변이가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건강한 생활습관이 변이 유전자를 억제하는 방어막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예방 가능한 3분의 1을 위해서라도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병상에서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mRNA 백신과 AI 진단 — 암 치료의 판이 바뀌고 있다
치료를 받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년 후에 진단받았다면 치료 방법이 지금과 완전히 달랐을까?'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임상 단계에서 나오는 결과들을 보면, 암 치료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mRNA 암 치료 백신입니다. 기존 백신이 감염 예방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 백신은 이미 발생한 암을 공격하는 치료용입니다. 암 조직을 떼어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정상 세포와 다른 돌연변이 부위를 AI가 골라냅니다. 그 서열로 mRNA를 합성해 체내에 주입하면 면역 세포가 해당 표적을 인식해 암세포를 공격하게 됩니다. 췌장암 환자 대상 임상에서 90% 이상의 반응률을 보였다는 보고가 나오면서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아직 임상 단계라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환자 맞춤형이기 때문에 비용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AI 진단 분야도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유방 촬영 사진 두 장을 AI에게 보여주면, 사람 눈에는 정상으로 보이는 이미지에서 5년 내 암 발생 확률을 예측한다는 기술이 미국에서 이미 상용화돼 있습니다. 병리 슬라이드 이미지를 AI에게 주면 항암 치료 필요 여부를 예측하는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사람이 볼 수 없는 패턴을 AI가 읽어내는 거죠. 이 기술들이 보편화된다면, 앞으로는 온코타입 DX 같은 분자 검사 없이도 조직 이미지 하나로 치료 방향이 결정되는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기술들이 모든 환자에게 당장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규제 승인, 비용, 접근성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암 치료가 점점 개인화·정밀화되고 있다는 흐름은 분명합니다. 지금 치료받는 입장에서, 조금 이르게 태어났다는 아쉬움이 솔직히 없지 않습니다.

